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 및 심판 (문단 편집) == 가결 당시 == ||<-6> {{{#white {{{+1 '''[[대한민국 대통령|{{{#white 대통령}}}]]([[노무현|{{{#white 노무현}}}]]) [[노무현 대통령 탄핵 소추|{{{#white 탄핵소추안}}}]]'''}}}}}} || ||<-6> {{{#white (의안번호: 163171) (발의일: [[2004년|{{{#white 2004년}}}]] [[3월 9일|{{{#white 3월 9일}}}]]) (의결일: {{{#white 2004년}}} [[3월 12일|{{{#white 3월 12일}}}]])}}} || || {{{#black,#e5e5e5 '''재적'''}}} || {{{#black,#e5e5e5 '''재석'''}}} || {{{#black,#e5e5e5 '''가'''}}} || {{{#black,#e5e5e5 '''부'''}}} || {{{#black,#e5e5e5 '''기권'''}}} || {{{#black,#e5e5e5 '''무효'''}}} || || 272 || 195 || '''193''' || '''2''' || '''0''' || '''0''' || ||<-2> {{{#white '''결과'''}}} ||<-4> 재적의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여[br]{{{#green,#7fff7f {{{+1 '''가결'''}}}}}} || ||<-2> {{{#white '''후속 절차'''}}} ||<-4>{{{#3f51b5,#495bc0 ● [[노무현|{{{#3f51b5,#495bc0 대통령}}}]]:}}} 탄핵소추의결서 수령 및 권한 행사 정지([[대한민국 헌법|헌법]] 제65조 제3항) {{{#3f51b5,#495bc0 ● [[고건|{{{#3f51b5,#495bc0 국무총리}}}]]:}}} 사고로 인한 대통령 권한대행([[대한민국 헌법|헌법]] 제71조) {{{#3f51b5,#495bc0 ● [[헌법재판소|{{{#3f51b5,#495bc0 헌법재판소}}}]]:}}} 탄핵소추의결서 수령 및 탄핵심판 개시([[대한민국 헌법|헌법]] 제111조 제2호)(사건번호: 2004헌나1)|| [youtube(axhDzAHsLaw)] >"총 투표 수 195표 중 가 193표, 부 2표. 헌법 제65조 2항 단서의 규정에 의하여 대통령 노무현 탄핵소추안은 __가결되었음을__ 선포합니다." >---- >[[박관용]] 당시 국회의장의 노무현 탄핵소추안 가결 선포. >"여러분, 얼마나 놀라셨습니까? 설마 그러랴 했습니다마는 [[노무현]] 대통령 탄핵안이 가결됐습니다. 헌법 기관인 국회의원의 개별적인 판단이라고는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 193명의 찬성으로, '''비리로 점철된 16대 국회는 이제 대통령의 권한을 정지시킨 것입니다.''' 탄핵 가결, 그 최대 피해자는 물론 우리 국민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 > [[엄기영]] 앵커의 당시 오프닝 멘트[[https://imnews.imbc.com/replay/2004/nwdesk/article/1960468_30775.html|#]]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551745|대통령 탄핵안 발의 당시 KBS 뉴스 9]], [[https://imnews.imbc.com/replay/2004/nwdesk/2137902_30773.html|대통령 탄핵안 가결 당시 MBC 뉴스데스크]][* 이날 뉴스데스크는 8시부터 시작해서 10시 반까지 2시간 반 동안 진행되었다. 여담으로 당시 제공 자막(광고주 목록)이 끝없이 나왔는데 원래는 7시대에 방영될 프로그램이나 일일 연속극이 방영할 때 나와야 할 광고들을 전부 특집 뉴스데스크 광고로 편성했기 때문이며 제공 자막이 원래는 이것보다 훨씬 느렸지만 이날만큼은 빨리 지나갔는데도 불구하고 오프닝 음악이 2절까지 나왔으니 얼마나 광고가 많이 있었는지 알 수 있다. 그래서 뉴스데스크 시작 전에 보통 2분 45초 정도 나와야 할 광고를 '''5분간''' 편성했고 뉴스데스크가 끝나기 직전에 나온 광고는 '''10분 30초씩'''이나 편성했다.] [[2004년]] [[3월 12일]] 탄핵안을 대표로 발의한 [[유용태]], [[홍사덕]], [[조순형]] 의원의 노무현 대통령 탄핵을 주장하는 연설과 함께 탄핵 소추가 시작되었다. 본래 하루 전날인 [[3월 11일]]에 탄핵소추안을 처리하려고 했으나 열린우리당 의원들의 본회의장 불법점거 등으로 무산되었다.[* 참고로 이 날 [[노건평]]에게 뇌물을 건넸다는 의혹에 휩쓸린 남상국 대우건설 사장이 서울 한남대교 밑에서 [[투신자살]]했고 이에 탄핵에 반대하던 [[자유민주연합]]이 자유투표로 당론을 선회하면서 탄핵안 가결이 급진전되었다.] 다음날 본회의장에서는 대통령 탄핵을 막겠다며 [[열린우리당]] 의원들이 사흘 넘게 점거 농성을 하고 있었다. 탄핵 소추 날이 되자 국회에 의자와 서랍을 쌓고 문을 끈으로 묶어 국회를 봉쇄하거나 아예 의장대 아래에서 잠을 청하기도 하는 등 불법점거도 마다하지 않았다. 새벽 3시 50분 홍사덕, 유용태 총무 지휘 아래 [[김무성]], [[이병석]], [[최명헌]], [[황창주(1955)|황창주]], [[최병렬]], [[박상천]], [[조순형]] 등 수십명의 한나라당과 민주당 의원들은 본회의장 중앙통로를 통해 기습적으로 진입하였고 [[정동영]], [[이부영]], [[정세균]], [[김부겸]], [[이종걸]], [[김희선(정치인)|김희선]], [[김근태]] 등의 [[열린우리당]] 의원들이 이를 막아서며 본회의장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격렬한 몸싸움이 시작되었다. 결국 새벽 4시 20분 열린우리당 의원들에게 가로막힌 야당 연합들은 공성전을 멈추며 잠시 휴식을 취하였다. 그동안 [[이재오]] 등 야당 의원들은 본회의장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작전을 구성하였으며 당시 야당 국회부의장 [[김태식]]과 [[조부영]]도 본회의장에 도착한 뒤 탄핵안 상정에 대비하였다.[* 당시 [[국회부의장]] 두 자리는 모두 야당 몫이었다.] 새벽 6시경에 국회 현관 앞에서 노무현 대통령 탄핵을 반대하는 40대 남성이 승합차를 몰고 와 차에 불을 지른 뒤 달아나다가 국회 경비대원들에게 격투 끝에 붙잡히는 일과 [[노사모]] 회원인 [[백은종]]이 분신 자살을 기도하다가 병원으로 실려가는 일도 있었다. 그러나 오전 11시 4분 본 회의가 시작되고 야당 의원들이 경호원을 대동하고 동시에 입장했으며 박관용 국회의장이 질서유지권을 발동하여 의장석 주변에서 농성 중이던 유시민 등 열린우리당 의원들은 순식간에 경호원들과 야당 의원들에게 포위되어 끌려나갔다. 당시 이부영 의원은 국회 경위들에게 끌려나가면서 언론을 향해 정당한 절차를 밟지 않은 쿠데타라고 주장했고 김희선 의원은 [[인증샷|이날 일을 역사에 남기겠다며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기도 했다]]. [[http://imnews.imbc.com/20dbnews/history/2004/1960498_19594.html|#]] 유념할 것은 탄핵 소추가 전반적인 국민 여론과 상반된 것과 별개로 열린우리당 측의 농성은 엄연한 불법 점거이자 공무집행방해에 해당되기 때문에 박관용 국회의장이 질서유지권을 발동해 열린우리당 의원들을 끌어낸 것 자체는 법적으로 정당한 행동이었다. 부당한 탄핵 발의라면 이를 통과시킨 국회의원들이 이후에 선거에서 국민의 심판을 받으면 되는 것이지, 자신들의 의견과 대립한다고 국회를 점거해 마비시키는 게 정당한 권리행사인 것은 아니다. 오전 11시 22분 박관용 국회의장이 의장석에 앉고 탄핵 소추안 상정이 시작되었다. "개회를 선언합니다", "의사일정 제1항 대통령(노무현) 탄핵소추안을 상정합니다", "[[조순형]] 의원이 나올 제안설명은 유인물로 대체합니다", "무기명 투표를 실시합니다" 이 몇 마디 말이 끝난 때가 오전 11시 25분, 그러니까 딱 3분 만에 번개같이 탄핵 소추안 심의를 끝냈다. 이후 투표가 30분간 진행되었고 몇몇 열린우리당 의원들이 투표를 방해하기 위해 저항하였으나 이내 가로막혔다. 이 와중에 [[박근혜]] 한나라당 의원은 투표용지를 접지 않은 채 대놓고 찬성표가 보이게 투표하였는데 이를 두고 당시 정세균을 비롯한 열린우리당 의원들은 '박근혜, 공개 투표하지 마!'라고 소리치기도 했다. 이후 탄핵이 가결되자 웃으면서 떠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열린우리당 의원들이 전원 불참한 가운데 총 195명의 의원이 투표를 실시하였으며 투표 결과 193명이 찬성하고 2명이 반대해 탄핵안이 가결되었다. 박관용 국회의장은 의사봉을 잡고 세 번 내려치며 탄핵소추안 가결을 선포하였다. 탄핵안이 가결되자 [[송석찬]] 의원은 분통을 터뜨리며 투표통을 집어던졌고 몇몇 열린우리당 의원들은 통곡하며 의장석으로 구두, 명패, 서류뭉치 등을 내던지기도 했다. 소란스러운 분위기 속 박관용 국회의장은 '''"[[https://www.youtube.com/watch?v=jmq8yhinKjs|대한민국은 어떤 경우가 있어도 계속 전진해야 합니다!!]]"'''라고 하였는데 이 말이 당시 (부정적으로) 화제가 되기도 하였다. 탄핵 소추가 가결된 후 당시 통곡하던 열린우리당 의원들을 향해 [[자업자득]]이라는 말을 하기도 했는데 오히려 앞 발언에 묻힌 감이 있다. 한편 수많은 카메라가 찍고 있는 가운데 마지막에 [[이근진]] 한나라당 의원이 탄핵안이 가결되자 카메라 앞에서 환하게 웃으며 만세를 하면서 '''"대한민국 만세! 자유민주주의 만세! 16대 국회 만세!"'''를 외치며 본회의장을 빠져나가기도 했다. 탄핵소추안 투표에 총 272명 중 195명이 참여하였다.[* 참고로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에는 [[최경환(1955)|국회의원 1명]]을 제외한 전원이 투표하였다. 본회의 개의 당시에는 투표를 '''거부'''한 최경환을 포함한 국회의원 전원이 재석하였으나 최경환은 투표시작과 동시에 회의장을 박차고 나갔다.] [[열린우리당]] 소속 국회의원 47명은 전원 불참 및 투표 거부를 하였고[* 열린우리당 의원들은 탄핵소추안 통과를 저지하기 위해 국회 본회의장에서 항의투쟁을 하였다.[[http://news.naver.com/main/read.naver?mode=LSD&mid=sec&sid1=001&oid=001&aid=0000589344|#]][[http://news.naver.com/main/read.naver?mode=LSD&mid=sec&sid1=001&oid=001&aid=0000589965|#]]] [[한나라당]] 소속 국회의원 16명[* [[김영일(1942)|김영일]], [[박주천]], [[박명환(정치인)|박명환]], [[박재욱(정치인)|박재욱]], [[신경식(정치인)|신경식]], [[박상규(정치인)|박상규]], [[최돈웅]] 의원은 구속된 상태였고 [[서정화(1933)|서정화]], [[윤영탁]], [[현승일]], [[이완구]] 의원은 해외출장으로 인한 불참. [[강삼재]], [[민봉기]], [[박종웅]], [[권태망]]은 공천에서 탈락한 이유로 불참. [[한승수]] 의원은 탄핵 반대 입장을 표하면서 투표에 불참하였다.], [[새천년민주당|민주당]] 소속 국회의원 9명[* [[박주선]], [[김운용]], [[이훈평]] 의원은 수감으로 인한 불참. [[장태완]] 의원은 해외출장으로 인한 불참. [[김기재]] 의원은 열린우리당 친분으로 인한 불참. [[설훈]], [[조성준(정치인)|조성준]], [[정범구]], 박종완 의원은 탄핵 반대파였으므로 불참하였다.], [[자민련]] 소속 국회의원 2명[* [[김종필]], [[조부영]] 의원이 불참하였는데 김종필 의원은 탄핵에 반대하는 뜻을 보이면서 불참하였다.], 무소속 국회의원 2명[* [[박승국]], [[오장섭]]]이 불참하였다. 탄핵투표는 무기명 비밀투표로 이뤄졌기 때문에 공식적으로 누가 반대표를 던졌는지 알 수 없지만 반대표를 던진 두 명을 [[자유민주연합]]의 [[김종호(1935)|김종호]] 의원과 [[새천년민주당]]의 [[이낙연]] 의원으로 추정하는 분석이 있었다. 3월 15일 [[딴지일보]]에서는 반대표를 던진 2명의 국회의원이 누군지 찾는 이벤트를 펼치기도 했다.[[http://news.naver.com/main/read.naver?mode=LSD&mid=sec&sid1=001&oid=031&aid=0000038003|#]] 3월 16일 김종호 의원이 '탄핵 사유가 부족하다고 생각했다'며 반대표를 던졌다고 직접 밝혔고[[http://news.naver.com/main/read.naver?mode=LSD&mid=sec&sid1=001&oid=028&aid=0000050437|#]][[http://news.naver.com/main/read.naver?mode=LSD&mid=sec&sid1=001&oid=001&aid=0000596214|#]][* 이후 탈당했고 비례대표였기에 의원직을 상실했다. 당시 증평-진천-음성-괴산 지역구 출마를 준비하고 있었으나 24일 출마를 포기했다.] 다음 날(3월 17일) 이낙연 의원의 측근이 이낙연 의원도 반대표를 던졌다고 밝혔다.[[http://news.naver.com/main/read.naver?mode=LSD&mid=sec&sid1=001&oid=015&aid=0000693482|#]] 다만 이낙연 의원은 이 문제로 새천년민주당 내에서 난리가 나자 반대표 여부에 대해 노코멘트라고 답하였고 2021년에 [[더불어민주당 제20대 대통령 후보 경선]] 중 문제 제기로 인해 이 문제가 다시 부각되자 [[KBS 9시 뉴스]]에 출연하여 자신이 당시 탄핵에 반대표를 던졌다고 직접 밝혔다. 탄핵 표결 당시 이낙연 의원의 모습이 담긴 동영상도 공개되었는데 탄핵 찬성을 위해 스크럼까지 짜는 등 적극적으로 행동했다는 [[이재명]] 캠프 측의 주장과는 달리 영상 내내 멀리서 사태를 관망하다가 [[국회폭력|몸싸움]]이 일어나자 몸을 피하는 등 매우 소극적으로 참여했음을 알 수 있다. 이낙연 의원은 지금이야 정치적 거물이지만 당시에는 초선 의원에 불과했다는 것을 감안할 필요가 있을 듯. 또 당시 탄핵 역풍으로 민심이 흉흉한 상황에서 표결에 참여한 의원에게 유일한 탈출구로 볼 수 있었던 단 2표의 주인공이 김종호, 이낙연 의원이 아니라 제3자였다면 분명히 언론을 통해 입장을 밝혔겠지만 언론사에서 아무리 취재해 봐도 김종호, 이낙연 의원 이외의 제3자는 나오지 않으므로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에서 반대표를 던진 2명은 자유민주연합 김종호 의원과 새천년민주당 이낙연 의원이 확실하다고 볼 수 있다. [[이낙연 노무현 탄핵소추안 찬반 논란]] 참조. 반대표를 행사한 2명의 의원에 대한 평가는 크게 두 가지로 갈리는데 불참 등의 다른 방법이 있었음에도 탄핵 투표에 참여하여 머릿수를 채워줬다는 비판과 당시 야당에서 적극적으로 밀어붙이던 탄핵에 어쩔 수 없이 참여는 했으나 그래도 반대표를 던짐으로써 부당한 탄핵에 대한 자신의 소신을 표현했다는 옹호로 나뉜다.[* 탄핵소추안이 부결되기 위해서는 투표 인원의 과반수 이상으로 반대표를 얻거나 재석수의 2/3 이하, 즉 181명 이하만 참여하면 된다. 그런데 투표 구성원 대다수가 탄핵 찬성파였으며 그나마 부결시키기 위해서는 투표에 불참하는 방법밖에 없는데 투표장에 181명을 초과한 195명이 표결에 참여했다. 이 때문에 과반을 넘지 않는 극소수의 반대표가 실질적인 위력을 발휘하기는 어려운 상황이었다.] 실제로 탄핵 소추안이 가결된 후 전국에서 촛불집회 및 투표에 참석한 국회의원 명단을 공유하면서 낙선운동이 펼쳐지기도 했다.[[http://news.naver.com/main/read.naver?mode=LSD&mid=sec&sid1=001&oid=003&aid=0000038102|#]][[http://news.naver.com/main/read.naver?mode=LSD&mid=sec&sid1=001&oid=052&aid=0000030071|#]][[http://news.naver.com/main/read.naver?mode=LSD&mid=sec&sid1=001&oid=001&aid=0000590998|#]] 또 탄핵안이 가결된 후 후술된 내용과 같이 민심이 들끓던 시기에 반대표를 행사했다고 밝히는 것은 책임회피, 면피성 발언이 아니냐는 지적이 있다.[* 김종호 의원이 직접 반대표를 던졌다고 밝힌 날 이전인 3월 12일부터 3월 15일까지 기고했던 기사들에 의하면 탄핵을 주도한 한나라당, 민주당 등 전부 역풍이 상당히 심했던 것을 짐작할 수 있다.[[http://news.naver.com/main/read.naver?mode=LSD&mid=sec&sid1=001&oid=001&aid=0000591743|#]][[http://news.naver.com/main/read.naver?mode=LSD&mid=sec&sid1=001&oid=001&aid=0000592672|#]][[http://news.naver.com/main/read.naver?mode=LSD&mid=sec&sid1=001&oid=021&aid=0000063146|#]]] 한편, 당시 탄핵을 결사 반대했던 [[정동영]] 당시 열린우리당 의장과 '''탄핵을 추진했던''' [[추미애]] 당시 민주당 의원의 근황[* [[https://cm.asiae.co.kr/article/2023070410400824805?utm_source=news.v.daum.net&utm_medium=referral&aceRef=https%3A%2F%2Fv.daum.net%2Fv%2F20230704143218780|#]]]은 다음과 같다. 천정배, 정동영 등은 [[대통합민주신당]]에 합류했다가 [[새정치민주연합]]에서 이탈해 [[국민의당(2016년)|국민의당]]으로 이동했고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호남 지역 의석을 다수 가져가 제3의 지대로 우뚝 서는 듯했지만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완전히 몰락했고 [[2022년]] [[1월 17일]] [[더불어민주당]]에 복당하고 [[제20대 대통령 선거]]에서 [[이재명]]을 지원했다. 추미애는 [[친노]]계의 후신인 [[친문]]계와 다시 손을 잡고 당 대표를 지냈으며 2020년대 들어 [[문재인 정부]]의 법무부장관으로 임명되기까지 하면서 재기에 성공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